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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대형 수리 조선소가 필요한 이유[투자,멘탈] 2025. 4. 9. 06:30728x90
#권효재
[한국에 대형 수리 조선소가 필요한 이유]
2000년대 중반 중국은 LNG선 건조에 착수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LNG를 들여오는 계약을 체결한 후 국수국조 (자국 배로 자국에 필요한 물자를 수송) 원칙에 따라 LNG 운송선을 건조하기로 한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기술력이 뛰어난 후동중화 조선소가 LNG선 건조에 착수했고, 멤브레인 LNG 화물창 기술을 프랑스 GTT로부터 도입했으나, LNG선 건조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후동중화는 진즉부터 한국 조선소들에게 SOS를 쳤었다. 그 때는 전 세계 거의 모든 기업들이 중국에 공장을 짓고 합작 사업을 하던 때였다. 후동중화는 한국 조선소들이 LNG선 건조 노하우를 공유하면, 중국에서 한중 합작 조선소를 지을 의향까지 있었다. 하지만, 한국 조선소들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90년대 후반부터 중국 조선소들의 약진을 경계했고, 무엇보다 아직 일본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마당에 수익성 높은 LNG선 건조 기술을 외부에 공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도 프랑스 GTT 기술을 도입한건 동일했지만, 많은 부분을 독자적으로 개량하고 대량 연속 건조가 가능하게 했으므로 이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노하우였다.
소위 산업 스파이에 대한 경계까지 겹쳐 한국 조선소들은 중국 조선 관계자들이 아에 조선소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다. 한국에 발주한 중국 해운사들의 감독관들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김해공항에서 출국하려던 감독관을 체포해서 노트북과 USB를 압수하고 기소하기까지 했던 시절이었다. 중국인들은 체면을 중시하는데, 합작 제휴가 일언지하에 거절 당한데다가 이런 일들까지 겹치자 한국과의 LNG선 합작을 포기하고 역시 보복에 나섰다. 이 일 이후 한국 조선업 관계자들은 중국의 국영 조선소에는 출입이 어려워졌고 이후 치열한 경쟁이 지속되고 있다.
2010년 중반 이후 친환경 선박 기술이 중요해지고, 기존의 중유나 디젤유를 연료로 사용하던 흐름에 변화가 발생한다. LNG를 엔진 연료로 사용하는 LNG 이중연료 추진 엔진 (중유를 쓰거나 LNG를 쓰거나 운항 중 선택 가능)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선박용 2행정 저속 엔진은 독일과 핀란드 회사들이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고, 한국이나 중국은 이를 라이센스 생산하고 있었지만 엔진에 LNG를 공급하는 기술 그 자체는 일부 한국에서 원천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이 역시 한국 조선소들이 철저하게 기술 보안에 신경썼다.
그런데 이번에는 과거 LNG선의 사례처럼 중국에서 한국의 LNG 추진선 (LNG 이중연료 추진 엔진을 쓰는 선박) 기술에 대해 별다른 갈증을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그 사이 한국에서 수리 조선소들이 모두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상업용 선박은 통상 수명이 25~30년이고 잘 관리하면 40년 이상도 쓸 수 있다. 선박의 수명을 갉아 먹는 건 해수로 인한 선체 손상이다. 따개비가 붙어 배가 느려지기고 하고, 배관이 터지기도 하고 낡은 기계들이 작동을 안 하기도 한다. 그래서 선박의 안전과 품질을 보증하는 선급에서는 주기적으로 선박을 검사해서 운항을 할 만한 상태인지 점검하고 인증한다. 이 인증이 없으면 보험사에서 보험을 들어 주지 않으므로 해운사가 운항에 투입할 수 없다. 자동차 정기 검사와 비슷한 개념이다.
선박 정기 검사는 5년에 한 번은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배가 인도된 후 첫번째 정기 검사, 즉 인도후 5년 경과 시점에서의 정기 검사는 조선소 사정이 되면 조선소에서 직접 해주기도 하지만, 그 이후로는 100% 수리 조선소에서 해야 한다. 일이 바쁜 배는 운항 노선 인근의 수리 조선소를 예약해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를 받기 전에 문제가 될 항목을 확인하고 고쳐야 하고, 배는 시간이 돈이므로 수리조선소 입항, 수리, 검사까지 2주 안에 마치는게 보통이다.
수리 조선소에서 하는 수리(Maintenance), 보수(Repair), 오버홀(Overhaul) 작업을 MRO 라고 한다. 사진에서 보듯이 미 해군의 낡은 선박이 새 배처럼 탈바꿈되기도 한다. 작업은 노동 집약적이고 환경 오염을 다수 발생시킨다. 고압 세척기로 따개비를 떼내고 블라스팅을 치고 도장을 옥외에서 해야 한다. 고장난 배관을 제거하고 배 안의 오물과 쓰레기도 다 비워내야 한다. 오래된 배는 도면도 제대로 없는데 2주 안에 수리를 다 마쳐야 하니 철야 작업은 기본이다. 수리가 제작보다 힘든 경우가 많으므로 고기량자들이 필요한데, 육체적으로는 힘든 일이고 무엇보다 돈을 많이 주지 않는다. 낡아 빠진 배를 고치는데 큰 돈을 쓰는 선주는 없다.
2000년대 이후 기간 항로는 중국을 중심으로 개편되었고, 컨테이너 물동량 상위 5위까지의 항만은 모두 중국 항구들이므로 자연히 중국에 수리 조선소들은 성업중이다. 중동 인근에는 유조선 관련 수리 조선소들이 많고 우리나라는 오만에 현대식 수리 조선소 건설을 지원하기도 했었다. 수리 조선소가 많으면, 입고 되는 배의 모든 속내를 다 파악할 수 있다. 아무리 최신의 첨단 기술을 넣어서 건조 과정 중에는 보호를 했다고 해도, 수리 조선소에서 3D 스캐너 한 번 돌리면 실제 무엇을 어떻게 배치 했는지 다 파악할 수 있다.
미군이 자국 내에서 해군 MRO가 처리 안되니 일본과 한국을 찾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중국 수리 조선소에 배를 맡길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건조 과정이나 운항 중 보안에 노력해도 근본적으로 수리 조선소에 MRO 업무를 맡기면 그 배의 모든 것이 다 털리게 된다.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가 LNG선이나 LNG추진선이나 미래에 나올 어떤 새로운 첨단 선박을 지어도 5년후에는 모든 기술이 중국에 다 털리게 되어 있다. 그게 싫다면 한국에서 정기 수리를 하라고 하면 되지만, 한국에는 이제 대형 수리 조선소가 없다. 대안으로 제3국의 수리 조선소와 계약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건 비용 측면에서도 그렇고 장기적으로는 역시 노하우의 유출을 막을 수 없다.
지금까지 국내 조선소들이 만들어서 인도한 LNG선이 누적 500척이 넘고 현재 주문량까지 합하면 향후 600척이 넘는 LNG선이 돌아다니게 된다. 이 배들의 MRO 수요만 해도 상당하다. LNG선은 배도 비싸지만, 수리를 해야 하는 업무도 단순히 외판을 갈고, 배관을 가는 정도에 끝나지 않으므로 사업을 잘 만들면 고부가가치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또 사업성이 없더라도 조선업 전체를 보면 노하우를 지켜야 하는 필요에서 중국에서 수리가 진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국의 산업 스파이를 막자고 노력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노하우가 담긴 선박들이 중국 수리 조선소로 한 해 수백척씩 들어가고 있다. 우리 조선소들은 신조 일감이 넘치고 사람도 부족하니 수리까지 하라고 할 수도 없다. MRO 사업에 관심있는 사람들과 지자체, 투자자들이 합심해서 한국에 다시 대형 수리조선소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미해군 MRO 사업도 한국에서 시작했으니, 더 이상 꿈 같은 소리는 아닐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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