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신
비트코인이 세상에 나온 지도 벌써 16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 역시 비트코인에 대해 틈틈이 공부해왔지만, 책으로만 봐왔지 정작 블록체인의 모든 거래와 블록을 직접 저장하고 검증하는 Bitcoin Core는 얼마 전에서야 처음 설치해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다. 공대를 나오긴 했지만, 프로그래밍에는 그리 재능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저 눈팅만 해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LLM이라는 훌륭한 친구 덕분에 이제는 GitHub나 프로그래밍 언어도 두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내가 비트코인 코어를 직접 설치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조금 더 들여다 보니, 비트코인 코어 외에도, 실시간으로 블록 생성 과정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웹사이트들이 여럿 존재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Mempool.space이다. (첨부 그림 참조)
이 사이트는 비트코인 블록의 생성과 트랜잭션 처리 과정을 매우 직관적으로 시각화해준다. 좌측에는 현재 생성 중인 블록이, 우측에는 이미 번호가 부여되어 체인에 추가된 블록들이 순차적으로 나타난다.
각 블록을 클릭하면, 블록 해시값, 채굴 보상, 수수료 총액, 채굴자 정보, 그리고 그 안에 포함된 수천 건의 트랜잭션까지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나 역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찾아보았다. 과연, 사토시 나카모토가 만든 제네시스 블록은 어떻게 생겼을까?
https://mempool.space/block/0을 열어보니, 제네시스 블록은 마치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듯한 연출로 디스플레이되어 있었다. 물론 단순한 해시값 덩어리에 불과한 이 블록이 실제로 빛을 낼 리는 없지만, 멤풀은 제네시스 블록을 그 상징성에 걸맞게 꽤 인상적으로 표현해두었다.
이어서 내 비트코인 코어에서 아래 명령어를 입력해보았다:
- getblockhash 0
명령어를 치자마자, 16년 전 만들어진 제네시스 블록의 해시값이 출력되었다:
- 000000000019d6689c085ae165831e934ff763ae46a2a6c172b3f1b60a8ce26f
이 해시를 바탕으로 getblock 명령어를 입력하면, 제네시스 블록의 상세 정보가 화면에 펼쳐진다. 블록 높이, 생성된 시간, 머클루트, 단 하나의 트랜잭션, 1이라는 난이도, 그리고 사용할 수는 없지만 기록된 50 BTC의 채굴 보상까지.
이는 말 그대로 ‘제네시스 그 잡채’ 영원히 변하지 않을, 비트코인 창조의 기념비적인 첫 장면이다.
비트코인 코어를 처음 설치하면, 전체 블록체인 데이터를 동기화하는 데 하루 이틀이 걸린다. 이마저도 고성능 SSD와 빠른 CPU가 장착된 데스크탑 기준이다.
일반적인 노트북 환경에서는 일주일까지 걸리는 경우도 있다. 현재까지 비트코인의 전체 블록체인 데이터는 약 600GB에 달하며, 매년 약 50GB씩 증가하는 추세다.
동기화란 단순한 다운로드가 아니다. 모든 블록의 해시, 트랜잭션, 그리고 유효성까지 검증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은 보통
1. 블록 헤더를 먼저 동기화한 뒤,
2. 블록 본문을 다운로드하고,
3. 각 트랜잭션을 모두 검증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흔히 블록체인을 탈중앙적 민주주의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그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나 자신의 컴퓨터에서 전체 블록체인을 내려받고, 직접 검증함으로써 어떠한 중앙 서버나 권위도 없이 네트워크 전체의 합의가 형성되는 것이다.
비트코인 코어는 블록체인 전체를 저장하느라 600GB 이상의 디스크 공간을 요구하지만, 프루닝 모드(pruned mode)를 사용하면 훨씬 가볍게 운영할 수 있다.
이 모드는 전체 블록체인을 처음부터 검증은 하되, 디스크 용량을 줄이기 위해 과거의 오래된 블록 데이터는 자동으로 삭제하고, 최신 블록만 보관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bitcoin.conf 설정 파일에서 prune=550을 입력하면, 이는 최대 550MB만 블록 본문에 할당하겠다는 뜻이며, 실제 운영 시 전체 600GB 중 약 10~15GB 수준의 디스크만으로도 비트코인 풀노드를 돌릴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저사양 PC나 노트북, 혹은 라즈베리파이 같은 경량 장비에서도 검증 가능한 탈중앙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블록의 유효성 검증은 모두 수행되므로, 보안성과 네트워크 내 위치는 일반 풀노드와 동일하다. 다만 삭제된 과거 블록에 대해서는 getblock 등의 조회가 불가능하다는 제한이 따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나는 한 가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아, 이건… 아무도 바꿀 수 없겠구나."
GitHub에는 비트코인의 핵심 소스코드가 모두 공개되어 있다. 누구든지 Bitcoin Core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코드를 들여다볼 수 있고, 수정 제안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코드가 실제로 비트코인의 공식 구현에 반영되기 위해선 전 세계 개발자들과 사용자들의 다수 합의가 필요하다. 이제 와서 그 합의를 이끌어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전체 발행량 2,100만 BTC 중
1. 사토시 나카모토가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트코인만 100만 개 이상,
2. 여기에 개인 키 분실 등으로 영영 이동 불가능한 '잃어버린 코인'이 약 300~400만 개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출처: Chainalysis, Glassnode 등 분석)
즉, 실제 네트워크에 참여 가능한 코인의 비율이 70%를 채 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며, 프로토콜 변경에 필요한 절대다수의 합의(예: 90% 이상)를 이끌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구조가 되었다.
결국, 비트코인의 기술은 코딩 실력만으로 바꿀 수 없다. 그 위에 쌓인 시간, 분산, 상실, 합의라는 레이어들이 이 시스템을 진정한 "불변성의 성역"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아마도 “비트코인은 해킹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이들은, 바로 이와 같은 구조적 맥락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일 것이다.
물론, 누군가의 지갑이나 거래소는 해킹당할 수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소스코드, 그리고 16년간 쌓여온 블록체인 데이터. 즉, 생성된 블록들과 그 안의 거래 기록은 네트워크 다수의 합의 없이는 결코 자의적으로 수정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비트코인의 진정한 강점이며, 정말로 말 그대로, “하나님이 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 불리는 이유다.
비트코인의 코드는 지속적으로 진화하기는 한다. 실제로 GitHub에는 매년 수백 개의 커밋과 개선이 올라온다. 그러나 아무리 코드가 바뀌어도, 그 변화가 ‘비트코인답다’고 여겨지지 않으면 네트워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특히 총 발행량 2,100만 개와 같은 항목은 단순한 코드 한 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솔직히 이 숫자를 바꾸는 건 어렵지 않다. 나도 직접 코드를 수정해서 발행량을 4,200만 개로 늘릴 수 있다. 그리고 그걸 GitHub에 올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그 코드가 진짜 비트코인이 되려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자발적으로 다운로드하고 설치해 실행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그냥 혼자 만든 비트코인 짝퉁일 뿐이다.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기존의 합의에서 벗어난 소스코드를 바탕으로 등장한 사례가 있다. 그게 바로 비트코인 캐시(BCH)와 같은 하드포크 기반의 변종 코인들이다.
하드포크란 기술적으로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실제로 비트코인 캐시(BCH), 비트코인 SV(BSV), 비트코인 골드(BTG) 등은 모두 원본 코드를 가져와 자신들만의 철학과 규칙을 붙여 '또 다른 비트코인'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어떤 포크도 진짜 비트코인의 네트워크 효과, 보안성, 사용자 기반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코드야 누구나 복제할 수 있지만, 신뢰와 합의는 복제되지 않는다. 이게 비트코인의 불변성의 논리인 것이다.
기술적으로 더 뛰어난 암호화폐는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수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진짜 가치는, 그 기술이 아니라 그 위에 쌓인 ‘신뢰’와 ‘합의’에 있다. 이 두 가지는 아무리 정교한 코드로도 복제할 수 없다.
심지어 비트코인을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조차, 2014년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춘 채 완전히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여전히 작동하고, 그 생태계는 전 세계 수만 개의 노드와 수백만 명의 사용자에 의해 자율적으로 유지된다.
어찌 보면 인류는 과거에도 존재한 적 없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불멸의 질서’를 '우연히' 만들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1BTC의 가격이 1만 원이 적정한지, 10억 원이 적정한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이라는 단순한 원칙에 기반해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총 발행량이 2,100만 개로 고정된 비트코인에 대해 개인, 기업, 나아가 국가 차원의 수요까지 발생하게 된다면, 그 가격의 상단은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비트코인은 언제라도 그 신뢰와 합의가 무너지면 0원이 될 수 있는 자산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불멸의 질서’가 유지된다면, 그 가치는 이론상 무한대까지도 치솟을 수 있다.
비교해보면, 금은 다량 보유 시 물리적 보관이 어렵고, 순도를 100% 유지하거나 실물을 검증하기도 쉽지 않다. 반면 비트코인은 누구나 거래 내역을 추적할 수 있으며, 발행량은 누구도 변경할 수 없다.
이 상태가 유지된다면, 최소한 매년 각국 중앙은행이 만들어내는 인플레이션만큼은 자연히 헤지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추가적인 수요가 더해진다면, 비트코인의 가격은 단순한 상승이 아니라, '질적으로 전환되는' 또 다른 차원의 가치를 가질 수도 있다.
사실 지금과 같은 10만 달러에 육박하는 비트코인의 가격 자체도, 냉정히 말하면 말이 안 되는 수준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다시 묻게 된다.
“이미 말이 안 되는 가격이라면, 그 말이 안되는 가격의 수준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만약 이 자산에 신뢰를 대체할 수 있는 경쟁자가 등장한다면, 이 가격은 언제든지 붕괴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천 개에 달하는 알트코인들이 쏟아져 나왔음에도, 과연 그 어떤 것이 비트코인의 대체제가 될 수 있었는가?
결국 비트코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즉, “이것이 일시적 거품인가, 아니면 디지털 희소성에 기반한 신뢰 자산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비트코인을 보유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전략 역시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글은 비트코인을 사라고 권유하는 글도, 사지 말라고 경고하는 글도 아니다. 그저 이 놀라운 발명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해보고, 이 기술이 파생시킬 사회적 변화와 철학적 질문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제안일 뿐이다.
워렌 버핏과 찰리 멍거를 존경하는 나로서는, 애초에 암호화폐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단순한 투기 자산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특이한 존재임을 느끼게 된다.
아마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 사토시 나카모토조차, 비트코인이 이렇게까지 거대한 시스템과 담론을 낳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이 시스템이 어떻게 변모해 나갈지. 나는 그저 계속해서 지켜보며, 그 안에서 작은 통찰이라도 하나 더 얻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여전히 비트코인의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
2025.05.07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