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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운명을 좌우한다.[명리일반] 2022. 10. 14. 15:00728x90
말에도 영혼이 있어 운명을 좌우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늘 사용하는 말(言語)이 ‘신령한 힘(言靈)’을 지니고 있다고 하면 믿겠는가? 언령(言靈)이란 말의 힘, 말의 기운, 말이 지니는 에너지(氣)를 말한다. 우리가 평상시에 사용하는 말에는 신비스럽고 기묘한 마법과도 같은 힘이 들어있다고 전해진다.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언령마법이 그것이다. 문자와 말에는 신비한 어떤 힘이 있어 어떤 말을 하면 그 말에 담긴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상이 바로 언령사상이다. 이같은 언령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일명 언령술사(言靈術士)라고 부른다.
2007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정동영 후보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2004년의 총선과정에서 열린우리당 당의장으로서 총선을 총괄 지휘하는 과정에서 노인을 폄하하는 말실수로 엄청난 정치적인 인센티브를 상실했다. 그 후 절치부심한 끝에 2007년에 대통령후보를 차지했지만 자신이 내뱉었던 말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언령의 필수조건은 대표적으로 이름(姓名)이라 할 것이다. 요즈음 ‘새정치연합’을 창당 중인 안철수 위원장의 이름에서 철수, 양보, 포기라는 부정적인 뜻이 담겨있지 않은가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2011년 10월 26일의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9월 5일 안철수 후보는 박원순 후보에게 후보직을 양보(실질적으로 양보였는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지만)한다.
또 2012년 12월 19일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 중이던 11월 14일 안철수 후보는 상대방이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단일화 협상중단을 일시적으로 선언한다. 그리고 이어 11월23일 금요일 저녁8시20분경 안철수 대통령 후보는 스스로 불출마 선언의 기자회견을 한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과 안철수 위원장이 사용하고 있는 이름을 연관지어 언령사상과 한번 견주어 본다면 너무 지나친 처사일까? 자신의 이름이 내포하고 있는 철수, 양보, 포기라는 부정적인 뜻을 말이다. 이를 피해가는 방법도 있을 터인데 이를 바르게 안내하고 알려주며 도와주려는 주변의 올바른 책사가 없어 보인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이 말을 할 때에 말속에 들어있는 의미와 소리의 높낮이 등이 우주의 기운 즉 공간 에너지를 타고 진동파를 일으키면서 전파되는 파동현상을 이름 하여 언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언령을 불교에서는 만트라(मन्त्र, Mantra) 혹은 진언(眞言)이라고 하며, 기독교에서는 말씀(logos)이라고 표현을 한다.
말이 씨(種子)가 된다는 속담을 온 몸으로 실감 할 때도 있다. 그래서일까? 말이 지닌 힘을 가끔 실감할 때가 있다. 말을 내뱉는 그 순간 말은 이미 힘을 갖게 된다. 말에는 참으로 묘한 힘이 있다. 단 한 마디의 말로도 기분이 좋고 나쁨을 느끼고 더 나아가 사람의 인생이 좌지우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음이니 말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 또는 성장하면서 넌 참 예뻐, 좋은 사람이 될 거야,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라는 식으로 긍정적인 말(言靈)을 많이 듣고 자란 사람은 그 사람의 의식 속에 긍정의 힘이라는 언령의 파동이 자리하게 된다. 그러한 사람은 플러스의 파동이 심신에 채색(彩色)되어 인생 전체가 긍정적인 삶이 전개된다.
반면 태어날 때 또는 성장하면서 넌 안 돼, 나쁜 놈, 왜 그리 지지리도 못 났느냐 라는 식으로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듣고 자란 사람은 그 사람의 의식 속에 부정의 힘이라는 언령의 파동이 자리하게 된다. 그러한 사람은 마이너스의 파동이 심신에 채색되어 부정적인 삶이 전개된다.
좋은 물(水)에는 좋은 파동수, 좋은 파동수기(波動水氣)가 있다. 즉 물에도 결(물결)이 있듯이, 좋은 흙(土)에도 좋은 파동토, 좋은 파동지기(波動地氣)가 있다. 즉 흙에 결(흙결)이 있듯이 좋은 말(言)에도 좋은 파동언, 좋은 파동언령(波動言靈)이 있음이니 말에도 결(언결)이 있다.
이렇게 좋은 파동 속에서 자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차이는 그 결과가 너무나도 다르게 나타난다. 이렇듯 말에도 살아있는 기운이자 에너지인 영혼이 있는데 이를 언령이라 한다. 말을 할 때에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 아니겠는가?
함부로 말을 한 후에 후회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물론 정말로 화가 날 경우에는 혼자서 중얼중얼 해보는 것도 한 방법일 수가 있다. 이렇게 말에는 영혼이 있으므로 자신이 내뱉는 나쁜 말들이 자신에게 나쁜 기운을 가져올 수도 있다.
때때로 상대방이나 그 사람의 가정에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란다는 덕담을 해보자. 말로 복을 쌓을 필요가 있음이다. 속담에 천 냥 빚도 말 한마디로 갚을 수 있다고 했지 않는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각각 어떤 특정한 기운과 에너지를 가지고 나온다. 그 말이 전해지는 영향이 부정적으로든 아니면 긍정적으로든 말이다. 그 말이 밖으로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은 몽땅 우리의 몫이다.
가수는 자기가 불렀던 노랫말의 가사처럼 살다가 간다고들 하지 않는가? SBS드라마 ‘상속자들’에 나오는 대사를 보자. 가슴 저릿한 슬픔, 먹먹한 감동, 핑크빛 기류를 한가득 퍼뜨린 달콤한 로맨스, 온 몸을 전율케 하는 싸늘한 냉소와 웃음을 쏟아내게 만드는 코믹한 말들, 또 뼛속이 시린 독설들을 말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은 새해가 되면 덕담(德談)을 주고받는 풍습이 있다. 손아랫사람들이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면서 ‘올해도 강건하시고 평안하세요’라며 새해인사를 올린다. 그러면 웃어른들도 손아랫사람에게 그에 어울릴만한 덕담을 건네는 것이 보통이다.
아랫사람이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올해 사업 번창하길 바라네’, 결혼적령기가 된 미혼남녀라면 ‘올해는 좋은 짝을 만나 결혼해야지’ 라는 등의 덕담을 건넨다. 덕담이란 남이 잘되기를 축원하는 말로 고대 원시신앙인 점복(占卜)사상과 언령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것이다.
언령사상은 말에 영적인 힘이 있어서 말한 대로 된다는 생각이다. 옛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는 말도 언령사상에 비롯된 것으로 좋은 말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나쁜 말은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 쉬우니 평소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경계의 가르침인 셈이다.
그렇다면 언령사상은 언제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언령사상은 동서양에서 오래전부터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고대 그리스인들은 말에는 주술적인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예컨대 그리스인들은 말이 선포되면 말 그대로 이뤄진다고 믿었다. 또 히브리인들은 말의 힘을 신앙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흔적들이 성경의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 「야고보서」에 기자가 “혀를 잘못 사용하면 불(火)과 같아서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고 말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전통문화 속에서 언령사상은 어떤 형태로 전해오고 있을까? 덕담 말고도 삼국시대 향가(鄕歌)에 그 자취가 군데군데 남아 있다. 흔히 향가는 자체로써 언령과 주술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주사(呪辭)로 쓰인 경우가 많았다. 신라시대에 국태민안을 목적으로 불린 혜성가(彗星歌)와 도솔가(兜率歌)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이러한 모두가 노래(言)의 힘으로 소원하는 바를 성취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신라 진평왕 때 혜성이 나타나 우주의 중심이 되는 큰 별인 심대성(心大星)을 침해하는 괴변이 발생했다. 이에 융천사(融天師)가 혜성가를 지어 부르자 혜성의 변괴가 없어지고 때마침 신라를 침략한 왜구도 물러갔다고 전해진다. 당시 사람들은 천지일원(天地一源)사상에 따라 천체에 이변이 생기면 지상에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혜성가를 통해 혜성의 출현과 왜구의 침입을 막았다는 점에서 이를 주사(呪詞)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월명사(月明師)의 도솔가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신라 경덕왕 19년 4월의 초하룻날에 하늘에 갑자기 해(太陽)가 2개나 나타나더니 10일 동안 없어지지 않는 괴변이 일어났다. 이에 월명사가 왕명을 받고서 산화공양(散華供養)을 하면서 도솔가라는 산화가를 불렀더니 2개의 해 중에서 가운데에 있던 1개가 마침내 없어졌다.
하늘에 해가 2개라는 건 인간사로 치면 1국(國)에 임금(王)이 2명이라는 얘기이니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이는 아주 불경스러운 징조다. 그런데 도솔가를 통해서 신라는 정국의 안정을 되찾게 됨 셈이 아닌가? 이렇게 월명사가 왕명을 받고서 지어 부르게 한 노래(言靈)가 바로 도솔가이다.
그 외에도 구지가(龜旨歌) 등 고대의 시가나 민요인 풍년가(豊年歌) 등에서도 이 같은 사례들을 찾아볼 수가 있다.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어!’로 시작되는 풍년가는 노랫말에서 이미 올해도 풍년이 왔다고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이런 노랫말 역시 언령의 주술적인 요소를 담은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말(言)에 영적인 힘과 에너지가 있을까? 과연 말한 대로 모두 이뤄질까? 우선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서 검증된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대표적으로 ‘물 결정체의 실험’이 바로 그 예이다.
대안(代案) 의학박사인 일본인 에모토 마사루(江本勝)는 지난 2002년에「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에서 ‘물(水)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주장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영하 5℃상태의 물 결정체를 연구하면서 여러 나라의 문자를 보여주고 또 다양한 나라의 말로 물에게 말을 걸기도 하면서 물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 결과 뜻밖의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된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긍정과 칭찬을 담은 말(言)과 글(文字)을 들려주거나 보여줬을 때에는 물의 결정체가 아름다운 정육각형의 모습을 나타냈으니 말이다.
반면에 ‘미워해’ ‘짜증나’ 등의 부정적인 말(言)과 글(文字)을 들려주거나 보여줬을 때에는 물의 결정체가 온통 찌그러져 마치 암세포의 덩어리처럼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는 120여 컷의 물의 결정체 사진을 통해 물도 생명체이자 에너지(氣)의 전달매체이며 동시에 의식을 갖춘 존재라고 강조했다. 결국 물이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나 문자를 이해하고 반응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보인 셈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결과적으로 에모토 마사루(江本勝) 박사의 연구결과는 과학적으로는 물이 인간의 언어와 문자를 인식하는 유기체임을 입증한 것이다.
사람의 말이나 글을 알아듣는 것은 비단 물 뿐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조석으로 먹고 있는 아무런 생명도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밥과 찬들도 알아듣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은 더욱 구체적인 과학적인 데이터를 제시하기에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공통된 실험결과를 얻은 만큼 상당히 객관적인 결과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1개월 동안 감사해 고마워 라는 문구를 붙여 놓은 밥그릇의 실험에서도 밥에 곰팡이가 조금 피기는 했으나 대체로 밥이 상하지 않았다’는 실험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반면에 ‘1개월 동안 짜증나라는 문구를 붙여 놓은 밥그릇의 실험에서는 밥에 까맣게 곰팡이가 피어나고 부패가 심해서 보기에 흉했다’는 실험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는 모(某)대학교 제갈정웅 총장의 실험결과이다.
한편 언령사상과 함께 언신(言信)사상이라는 것도 있다. 언령사상이 말에 영혼이 있다는 주장이라면 언신사상은 말에 믿음이라는 메시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바꾸어 말하면 ‘언어가 인간의 생각인 사유(思惟)를 지배한다.’는 논리이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우리는 언어와 더불어 비로소 사유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또 훔볼트는 ‘우리는 언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대로 현실을 인식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고 언어의 주택 속에 인간이 산다’고 했다.
따라서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를 그들이 평소에 즐겨서 사용하는 말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성공한 사람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태도를 취한다. 반면에 실패한 사람은 평소에 불만과 짜증 등 부정적인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선한 말은 선한 일을 부르고 악한 말은 악한 일을 부르는 법이 아니겠는가?
성경의 잠언 16절 24장에 ‘선(善)한 말은 꿀단지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된다’며 선한 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우쳐주고 있다. 감사도 마찬가지이다. 말 못하는 식물도 감사를 표하면 반응을 보이는데 하물며 사람인들 오죽하겠는가?
‘감사합니다’를 입버릇처럼 늘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감사할 일이 생기는 법이다. 감사를 느끼고 그것을 불러줄 때에 비로소 감사는 내 곁으로 찾아와 나의 감사가 될 것이다. ‘말의 힘’은 말이 가지는 철학적 의미일 것이다.
선(善)한 말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따뜻한 말이다. 반면에 날카로워 칼과 같은 말, 화살과 같이 독한 말, 독사와 같이 독이 들어있는 말, 함부로 하는 말은 등은 사람을 죽이는 말이기에 우리가 경계를 해야 할 말들이다.
성경은 말이 사람을 흥하게도 만들고 망하게도 만드는 힘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내뱉는 말은 인생의 문고리이자 지도인 핸들이기에 오른쪽이라고 말하면 우측으로 향해 가고, 왼쪽이라면 좌측으로 향해 갈 것이며, 직진이라고 말하면 똑바로 향해 나갈 것이다.
가슴속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 바로 말이다. 사람은 자신이 한 말과 반드시 만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좋은 일이 있으면 ‘감사합니다’라고 당연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쁜 일이 있어도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면 그 순간에 불행의 사슬이 끊어진다.
입이라는 구(口)가 3개모인 것이 품(品)이고 품격이다. 말이 입으로 나오기 전에 뇌를 거친다. 그래서 뇌를 거쳐 나온 말은 뇌에 그 잔영으로 남는다. 즉 말속에는 혼(魂)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말에는 언령이 있다.
이렇게 말에는 에너지가 담겨있고 이루어지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말을 달고 살면 머지않아 그런 부정적인 예언(言)이 자신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걸 확인하게 될 것이다. 말이 갖는 고유한 진동과 파장이 있고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언령을 다른 말로 언혼(言魂)이라고도 할 수 있다. 좋은 말에는 좋은 영혼이 깃들어 있고, 나쁜 말에는 나쁜 영혼이 깃들어 있음이다.
말을 입 밖으로 내거나 그리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빌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말에 영혼이 살아 숨을 쉰다는 뜻이 아니라, 이는 말(言), 일(事), 호흡(呼吸)의 흐름을 상호의존관계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편 언령을 하나의 신앙으로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언령의 마력을 활용하는 기술을 터득해 자기 삶의 질을 향상시켜도 보고 운명의 질도 개선시켜보면 어떨까?
노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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